손끝으로 피워 내는 꽃, 채화를 만드는 사람들의 이야기 봄이면 산과 들은 물론 거리에도 온통 색색의 아름다운 꽃들로 넘쳐 납니다. 겨울 끝에서 불어오는 봄바람은 공연히 마음을 들뜨게 하지요. 그런데 이렇게 아름다운 꽃을 자연이 아닌 사람의 손끝으로 피워 낼 수도 있어요. 바로 채화예요. 채화는 궁중의 연회나 행사 때 장식으로 쓰였어요. 비단으로 만들어 언뜻 보기에 조화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우리 선조들이 아주 오래 전부터 온 마음을 다해 피워 낸 꽃이랍니다. 색을 내기 위해 비단을 여러 번 염색하고, 홍두깨로 두들기고, 꽃잎을 하나하나 인두로 지지고……. 채화를 피우기 위해서는 장인의 혼이 담긴 지극정성이 필요하지요. 책고래아이들 시리즈 열한 번째 동화책 《나비 공주》는 채화를 만드는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궁중채화장의 아들인 ‘도래’가 주인공이지요. 도래는 타고난 솜씨와 지식을 가지고 있었지만 채화가 싫었어요. 아버지와 같은 채화 장인이 되고 싶지 않았지요. 채화를 만드느니 차라리 봇짐장수가 되고 싶었지요. 방황하는 도래를 아버지가 채화 공방으로 데려갑니다. 딱 1년만 견뎌 보고, 그래도 싫으면 살고 싶은 대로 살라고 하면서 말이에요. 도래는 딱 1년만 견뎌 보겠다고 마음먹었지요. 그렇게 채화 공방 생활이 시작되었어요. 분주한 나날이 이어지는 가운데 도래는 우연히 공방에서 임금님의 딸인 정소 공주를 만납니다. 도래는 정소가 공주인 줄 모르고 허물없이 대했어요. 둘은 단짝 친구가 되었습니다. 정소를 만나고부터 도래는 채화를 대하는 태도가 달라지기 시작합니다. 채화 공방에 머무르면서 아버지를 이해하는 마음도 생겼지요. 그렇게 도래는 ‘장인’의 길로 한 걸음씩 들어섭니다. 《나비 공주》는 도래가 정소 공주와 만나 채화를 꽃 피우기까지, 그리고 어엿한 장인으로 성장하기까지의 여정을 담은 이야기입니다. 오늘날 세상은 빠르게 변해 갑니다. 민첩하고 영리하게 처신하는 것이 미덕인 것처럼 여겨지지요. 사람들은 ‘일등’, ‘성공’이라는 목적지에 도달하기 위해 부단히 지름길을 찾고 재빨리 경로를 바꾸어요. 어른들만큼이나 아이들도 치열한 경쟁 속에서 살아갑니다. 이런 시대에 한 길을 우직하게 걷는 채화 장인들의 모습은 어쩌면 답답해 보일지 몰라요. 하지만 무언가를 꾸준히 노력하여 끝내 이루어 내는 것은 여전히 가치 있는 일입니다. 《나비 공주》 속 이야기는 우리의 전통과 그 안에 깃든 정신에 대해 돌아보게 합니다. 아이들이 《나비 공주》를 통해 옛것에 더 관심을 갖게 되기를, 또 새로운 눈으로 세계를 바라볼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한 아이의 삶을 가로지르는 채화 정해진 운명을 거스르고 싶은 아이 장인들의 땀과 노력이 깃든 작품을 보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감탄이 나와요. 그저 바라보고 있는 것만으로 마음이 따뜻해지고 어지러웠던 머릿속이 맑아지기도 하지요. 하지만 누군가는 궁금해할 수도 있어요. ‘한 번 보고 말 것을 왜 이렇게 고생스럽게 만들까?’ 하고 말이에요. 더군다나 내가 만약 앞으로 그러한 장인의 길을 걸어야 한다면 수없이 고민했을 거예요. 《나비 공주》에서 도래가 그랬던 것처럼요. 도래는 궁중채화장의 아들이었어요. 아버지의 뒤를 이어 채화 공방을 이끌어야 할 운명이었어요. 하지만 도래는 점점 채화가 싫어졌습니다. 궁중행사를 마치면 태워 버려야 하는 ‘가짜 꽃’을 만드는 것도, 넉넉하지 않은 형편 탓에 어머니가 고생하는 것도 못마땅했지요. 남들보다 빼어난 솜씨와 지식을 갖추었으면서도 다른 일거리를 찾아 방황했습니다. 아버지는 도래를 채화 공방으로 데려갔어요. 공방에서 지내다 보면 흔들리는 마음도 제자리를 찾아갈 것이라 기대했지요. 하지만 장인들 곁에서 심부름을 하며 채화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지켜보면서도 도래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어요. 그런 도래 앞에 정소가 나타납니다. 도래는 정소가 공주인 줄 모르고 궁궐 나인을 대하듯 했어요. 궁에 들어가 임금님 곁에 선 정소를 보고서야 공주라는 것을 알았지요. 정소는 지금껏 만났던 사람들과는 다르게 자신을 친구처럼 대하는 도래가 마음에 들었어요. 둘은 그렇게 우정을 키워 갑니다. 정소의 부탁으로 채화를 만들면서 도래의 마음도 조금씩 달라져요. 아버지를 이해하게 되고, 채화를 만드는 장인들의 수고와 노력이 비로소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지요. 자신도 모르는 사이 채화 장인으로 성장해 나갑니다. 꿋꿋이 세월을 견뎌 내고 마침내 봄을 맞이하다 정소 공주는 세종대왕의 큰 딸이에요. 태종의 첫 손녀였기 때문에 태종과 원경왕후는 물론 왕실 어른들의 총애를 한 몸에 받으며 성장했어요. 특히 세종대왕은 유난히 정소 공주를 아껴서, 정사를 돌보느라 바쁜 와중에도 친히 학문을 가르쳤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정소 공주는 열세 살에 병을 얻어 세상을 떠나고 말았어요. 그녀가 죽은 뒤 세종대왕은 세상을 다 잃은 것처럼 가슴 아파했어요. 아무 일도 하지 못한 채 슬픔에 빠져 있었지요. 정소 공주와 도래는 신분 차이를 뛰어넘어 우정을 나눕니다. 하지만 우정은 오래가지 못했어요. 돌림병이 크게 돌면서 정소 공주를 비롯해 아버지와 삼촌까지 목숨을 잃었거든요. 사랑하는 사람들을 한꺼번에 떠나보낸 도래는 마음에 큰 병을 얻었어요. 입을 꾹 닫은 채 사찰에서 쓰이는 지화를 만드는 데 매달렸지요. 삼 년이라는 시간이 흐르고 나서야 도래는 마음 속에서 정소와 아버지를 떠나보낼 수 있었어요. 그리고 지난 날 아버지가 했던 말을 돌아보며 가슴속에 새겼지요. 그만큼 채화를 만드는 손끝도 더욱더 단단해졌습니다. 하나의 채화가 피기까지는 오랜 기다림과 수많은 손길이 필요합니다. 작가는 채화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생생하게 이야기 속에 녹여 냈어요. 덕분에 독자들은 궁중채화의 이모저모에 대해 자연스럽게 알게 되지요. 우리 선조들의 전통에 대해서도 한 번 더 생각해 보게 됩니다. 도래는 시련을 이겨 내고 듬직한 장인으로 자랐어요. “극심한 더위와 추위, 가뭄과 장마를” 견뎌 낸 꽃처럼 마침내 봄을 맞이했지요. 우리가 살아가는 모습도 이와 다르지 않아요. 크고 작은 어려움을 넘어서며 우리는 한걸음씩 앞으로 나아갑니다. 몸도 마음도 단단히 여물어 가지요.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도래의 성장담은 특별한 울림을 전할 거예요. 또 삭막한 경쟁 속에서 생기를 잃어가는 아이들이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힘을 줄 거예요. 《나비 공주》를 읽은 아이들이 모두 꽃처럼 피어나기를 바랍니다. ◎2018년 하반기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문학나눔